미디어

영화 <또하나의 약속>과 드라마 <펀치>, 작가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cultpd 2015. 1. 25. 15:41

작가 중에는 밥벌이를 위해 글을 쓰는 생계형 작가가 있고

기 검증된 플롯을 그대로 우라까이하여 마치 자신의 것인양 

내놓고 내놓는 족족 히트를 하여 거들먹거리는 스타 작가가 있다.


우라까이의 뜻은 언론계의 은어로 

다른 신문사나 방송에서 다룬 것을 요약하거나, 살짝 돌려쓰거나

베껴쓰는 표절 같은 것.




두 그룹 모두 자신의 윤택한 삶과 자식들에게 부를 물려주려는

탐욕을 기반에 둔 직업적 작가다.


하지만 작가는 원래 예술적 그룹에 속할 수도 있고

트렌드 세터, 오피니언 리더 집단에 들어갈 수도 있다.

물론 그러려면 많이 배고파야한다.

각혈을 하며 자신의 원고를 써내려가던 선배 작가들의 글을

우리는 창작이라 부르고

그 창작을 우라까이 한 작가들은 선배들의 고통과 추억을 팔아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영위한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참 좋은 작가들이 있다.

오늘은 누구를 까기 위한 글이 아니라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선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정말 따뜻한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드라마 같기도 하여

그 형식미가 오히려 새롭고 따라서 리얼리티가 극대화되었다.


감동과 리얼리티,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아주 잘 만든 영화다.


하지만 흥행?

당연히 흥행이 될 수가 없다.





<또 하나의 약속>은 이런 내용이다.


스무 살 여린 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한 아버지의 인생을 건 재판이 시작된다!

택시기사 상구(박철민)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아버지다. 

 상구는 딸 윤미(박희정)가 대기업에 취직한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한편으론 넉넉치 못한 형편 때문에 남들처럼 대학도 보내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 오히려 기특한 딸 윤미는 빨리 취직해서 아빠 차도 바꿔드리고 동생 공부까지 시키겠다며 밝게 웃는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윤미는 큰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어린 나이에 가족 품을 떠났던 딸이 이렇게 돌아오자 상구는 가슴이 미어진다.

 “왜 아프다고 말 안 했나?”

 “좋은 회사 다닌다고 자랑한 게 누군데! 내 그만두면 아빠는 뭐가 되나!”

 자랑스러워하던 회사에 들어간 윤미가 제대로 치료도 받을 수 없자, 힘없는 못난 아빠 상구는 상식 없는 이 세상이 믿겨지지 않는다. 상구는 차갑게 식은 윤미의 손을 잡고 약속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난 내 딸, 윤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아빠가... 꼭 약속 지킬게"


글만 읽어도 눈물나는 이야기다.

영화 <용의자 X>의 시나리오를 썼던 김태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반도체에 근무하다 백혈병 등으로 사망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내용이다.

 

그리고 현재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가 있다.


드라마 <펀치>의 박경수 작가다.

아무 정보 없이 우연히 <펀치>라는 드라마를 잠깐 보게 되고

푹 빠져서 드디어 오랜만에 내가 본방 사수할 수 있는

드라마가 나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황금의 제국>이란 드라마 이후에 오랜만에 본방 사수가 시작됐다.

나중에 작가를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박경수 작가가 바로 <황금의 제국>을 쓴 작가니까 ^^





사람은 안변한다더니

정말 취향은 변함 없고

작가의 스타일도 그대로인 것 같다.


이번 드라마 <펀치>에서는 법무부와 검찰 이야기를 다룬다.

이전부터 권력과 대기업, 부패와 유착 등을 아주 세련되게 잘 다룬다.

<또 하나의 약속>은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만

<펀치>는 흔한 상투적인 시한부 인생이나 부부의 갈등, 형제애 등의

뻔한 소재로 위장하여 시청자를 현혹하고 

그 스토리를 이어가면서 하고 싶은 말을 끊임없이 뱉는다.




그래서 피노키오나 상속자들처럼 대박이 나지는 않지만

지금은 동시간대 드라마 중 1위를 차지하고

최근 시청률은 12.3%로 <힐러> 시청률 9.7%, <빛나거나 미치거나> 시청률 8.2%를

가볍게 따돌리고 있다.


이는 내가 보는 드라마라서 시청률이 높구나라는 공감의식으로 기쁜 것이 아니라

벌써부터 박경수 작가의 다음 작품도 또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기쁘다.


거의 아이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기다리는 기분이 이런 것일 듯.


아무튼 수많은 우라까이 작가들, 생각 없는 작가들이 판치는 요즘,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거나

보는 사람들의 의식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혹은 앞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나 가능성만 던지더라도

그 작가는 얼마나 훌륭한 작가이며

진짜 작가인가?


유명해진 자신의 이름값을 지키기 위해 더 막장으로

더 표절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이 시대의 부조리나 비상식적인 일을 고발하고

좋은 세상으로 가는데 공헌하고 있는 작가의식이 있는

진짜 작가들이 있다.


<펀치>의 박경수 작가와 <또 하나의 약속>의 김태윤 감독.

그대들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오늘

삼성반도체 퇴직 노동자 故(고) 김경미씨가 항소심에서도 1심에 이어 

백혈병 사망에 대해 산업재해라는 판결을 받았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5일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는 지난 22일 김씨의 백혈병 사망에 대해 산업재해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1980년생인 김씨는 1999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사업장에 입사해 

4년 8개월간 2라인 및 3라인의 식각(에칭)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다 

2004년 퇴사했다. 

이후 결혼해 아이를 원했으나 불임과 유산을 겪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가 첫 돌이 되기 전인 2008년 4월 초 

급성골수성백혈병이 발병해 결국 2009년 11월 만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뇌종양 등 

중증 질환에 걸렸다고 제보한 사람이 164명이라고 밝혔다. 

사진출처 = 또하나의 약속 포스터, SBS 드라마